종목 - 세시간 대회
주제 - 어두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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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에 홍건히 흐르는 혈액은 아스팔트 바닥 위로 점차 영역을 넓혔다. 그 검붉은 액체는 마치 이리저리 뻗어가는 나무의 뿌리처럼, 대지의 갈라진 조그마한 물고를 따라서 틈새들의 사이로 스며들고 있었다. 초 여름. 날씨가 봄을 떠나서 슬슬 온기를 띄고 있던 참이었으나 그 때 그 곳의 기온은 그 이상의 상상을 긁어댈 정도로 미적지근했다. 평범한 기온에 사람 한 명이 해체되어 바닥에 널리면 느껴질 정도의 위화감이 눈 앞의 붉은 공간에서 뿜어져 왔다.
시체를 처음으로 봤다. 그것도 누가 먹다 남긴 시체를.
다행스럽게도 나는 천천히 걷고 있었다. 아마도 평소처럼 집에 빨리 가기 위해서 뛰고 있던 도중이었다면 나는 분명히 시체를 만들었던 누군가와 마주쳤을 것이다. 그랬다면 아마도 나 역시 그 붉은 공간의 일부가 되었을 거라고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가슴을 쓸어 내릴 정도의 정신까지 눈 앞의 광경에 빼앗기고 있었다.
시체를 본 것은 처음이었지만, 내가 본 것은 이미 시체가 아닌 하나의 공간, 영역, 세계였다. 현실과 괴리된 붉은 비현실이 축축하게 널려서 일상의 세계와 순간의 그 장소를 우악스럽게 나누고 있었다. 그 곳은 참으로 신선했다. 평소에 보지 못하던 다른 일면을 발견했을 때의 신선함이 아니다. 말 그대로, 보통의 경우 생선이나 고기 등의 음식에 사용되는 의미이다. 분명 그 곳의 상황은 종료되어 있었지만, 미처 종료되지 않고서 남아있던 흘러내리는 듯한 역동감이 있었다. 그 역동감은 지금도 한참 사람을 해체중인 정체 불명의 무언가가 존재하는듯한 환상을 자아내었다. 그것은 차라리 의식의 강간과도 같았다.
선명한 붉은 색이 시아를 잡는다. 그리고 그 비상식적인, 비현실적인, 비일상적인 영상을 강제로 나의 의식과 정신과 영혼에 삽입했다. 억지로 시선을 돌리려고 해도, 눈을 감으려고 해도 나의 육체는 그 세계에 의해 붙잡힌 체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미친 듯이 뛰는 심장의 고동과, 멈추지 않는 전신의 경련이 마치 자신의 몸이 외부의 무언가에 의해서 흔들흔들 흔들리는 것만 같았다. 내 몸을 붙잡은 정체 불명의 누군가가 나의 몸을 흔들고 있었다. 산산히 부숴진 사고는 허무의 거품이 되어 그 배려 없는 강제에 대해 윤활유가 되어주었다.
나는 아직 어린 아이였었지만 그간 살아오면서 나름의 고민도 있었다. 아픔도 있었고 성장도 있었다. 최소한 그 광경을 접하기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나는 아기가 배꼽에서 나올 거라고 막연히 상상만 하던 어린 아이와 다를 것이 없었다. 이 광경은 어린 아이를 강제로 겁탈하는 추악한 짐승처럼 평이한 인생을 살아오던 나의 처녀성을 송두리째 앗아갔다. 타의에 의해서 강제적으로 성행위를 경험한 어린 소녀처럼, 나의 세상에 대한 순진하던 인상은 그 날로 찢어발겨지고 말았다. 그 상황에 인과는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그저 그 곳에 우연히 도착했다는 이유만으로 그간 쌓아온 세계를 빼앗기고 말았다. 그 상황은 분명 잔혹하디 잔혹했다. 원망할 대상은 무척이나 희미했으며, 억지로 그 대상에게 원망을 퍼붓기 위해서 흐린 눈을 비비며 억지로 바라보려 할수록 이 쪽은 더더욱 세계를 파괴 당한다. 정체 불명의 괴물, 살육자, 파괴자, 악마, 강도, 사기꾼… 팔 하나를 먹혔다고 맹수에게 사죄를 요구하는 것은 어리석다. 없어져버린 팔의 뿌리를 다른 쪽 손으로 부여잡으며 아직도 우적우적 사라진 팔을 씹어먹고 있는 맹수에게 고함을 지른다 해도, 그 맹수가 입안의 고기를 다 씹어 삼키게 되면 다른 쪽 팔을 내줘야 할 뿐이다. 아니, 팔이 아니라 다리일지도 모른다. 그도 아니면 목숨일지도 모른다. 설령 그 맹수가 사죄를 한다 할지라도, 그 맹수의 눈은 이 쪽을 바라보고 있을 것이며 입에는 침이 고여있을 것이다. 맹수를 인지했다면 온 힘을 다해서 달아나는 것이 최선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공포스럽지는 않았다. 상실된 것은 상실 된 것이고, 일단 한번 그리 된 것은 되돌릴 수 없지만 그렇다고 이미 벌어진 일에 대해서 후회도 통곡도 할 필요는 없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죽음을 인식한다는 것은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나 경험하는 것이고, 다만 그 강도와 속도의 차이만이 있을 뿐인 거다. 나의 불행은 그 강도가 얼음물에서 바로 끓는 물로 뛰어드는 것 만큼이나 격렬했다는 것이다.
내가 이 사건에 대해서 담담하게 말한다고 놀라지는 말라. 이것은 내가 7살 때 일어났던 일이다. 그리고 과거에 일어났던 일을 그 때로 돌아가서 다시 한번 경험할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것은 꿈의 한 장면이었다. 꿈을 꿈으로 인식하는 순간, 세계는 깨어진다. 그리고 나는 다시 현 세계로 내동댕이 처진다. 그래, 꿈은 내게 아무런 해도 끼칠 수 없기에 나는 담담해질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꿈과 현실의 시간 차이는 이미 십년이 지났는데, 어째서 꿈 속의 나는 아직도 울며 하혈하고 있는 걸까?
-another
열린 창 너머로 보이는 아침은 그다지 좋은 날씨가 아니었다. 깨어난 나는 우선적으로 아직도 안구에 남아있는 것만 같은 붉은 풍경을 지우기 위해서 잠시 눈을 깜빡거렸다. 서서히 시아의 붉은 영상은 조금씩 희석되어, 결국에는 언제나의 내 방 풍경으로 바뀌어버렸다.
언제나의 내 방이다. 이 언제나라는 말이 얼마나 깨지기 쉬운 유리와도 같은지는 이미 먼 옛날에 깨달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언제나라는 말을 지나치게 남용했다. 파괴될 아름다움은 그 덧없음으로 인해 더더욱 빛을 발한다는 걸까. 그 아름다움을 나는 딱히 사랑할 생각도 경멸할 생각도 없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나는 아직 남자 경험이 없는 처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꿈을 꿀 때마다 그 안의 내가 하혈하고 있던 이유는 아마도 그 때에 너무나 잔뜩 봐버린 피의 이미지가 아직도 남아있는 탓이리라. 남자들과는 다르게 우리들은 피에 대해서 거부감이 덜하다. 원시시대에는 피를 흘리고도 살아가는 여성들에 대한 경외가 그녀들의 지위를 올려주었다는 이야기를 어디서 들은 적 있다.
나는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분명 방금의 꿈은 악몽으로 분류될만한 것이었지만, 이제 와서 기분 나빠 하거나 공포에 떠는 것은 너무나도 새삼스러운 일이 되었다. 이미 채념해버린 터라 이제 이 꿈을 안 꾸게 되는 것은 바라지도 않는다.
그렇다. 나는 언제나 주기적으로 비슷한 꿈을 꾼다. 보통 사람들은 전혀 모르는 이상하면서도 신비한, 또는 불명확한 꿈도 꾼다는 것 같지만 이상하게도 나에겐 그런 경험이 없었다. 오직 무한히 지속되는 과거의 되새김질 뿐. 어떤 꿈도 정신건강에는 이롭지 못한 꿈들이지만, 이미 실제로 그 순간을 경험한 자신에겐 아무리 괴롭고 끔찍하고 추악하고 공포스러운 순간이라 하여도 완전히 꿈에 불과했다. 이미 일어난 일, 끝난 일이라는 것을 세상 누구보다도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으니까. 우왁스럽게 주입된 바이러스가 만들어낸 항체는, 그 바이러스의 잔재쯤은 가볍게 격퇴하고 만다. 그 항체도 불쾌함은 막아주지 못하는 것 같지만, 오랜 시간 축적된 불쾌함은 또 다른 면역을 만들어버린 것 같았다.
그리고 내가 꾸는 꿈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꿈을 꾼다. 이건 정말 이제는 어쩔수가 없다. 희끄무레한 사람의 그림자가 내 방을 서성이고 있었다. 딱히 내 방에 용무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나는 그저 담담히 그를 바라보았다. 그와 눈이 마주쳤다. 하지만, 그는 나를 바라보지 못한다. 스처지나가는 시선이 서운하리만큼 무감정하다. 이윽고 내가 눈을 한번 깜빡거리자, 사람의 환영은 사라졌다. 난 잠에서 깨어나도 꿈 속에서 살아가는 셈이다. 나는 꿈을 거부하기 위해 다시 침대 위로 누웠다. 물론 잠은 오지 않았다.
그날 이후로 나는 이런게 보였다.
이런 세상에서 사느니 차라리 악몽일지언정 매일 매일 반복되는 과거를 보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하다. 나는 밝아오는 창문을 바라보며 새삼스럽게 복받처 오르는 눈물을 참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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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후로 나는 소극적인 사람이 되었다.
나는 내가 보고 싶지 않은 것을 봐버렸고, 지금 이 순간도 그런 것들이 보였다. 나는 이 세상에는 모르는게 나은 것이 있다는 것을 너무나 일찍 알아버렸다. 이런 내게 모험심이 싹틀 턱이 없다. 난 모험이 두렵다. 너무나 두렵다. 새로운게 두렵다. 세상이 두렵다.
그런 의미에서 학교는 마음이 편한 곳이다. 늘 하던대로 등교해서 늘 하던데로 있다가 늘 하던대로 집에 가면 된다. 반복되는 삶은 나에겐 안식처와도 같다. 변수 없는 삶이야말로 내가 바라는 삶이다.
여전히 친구들 사이로 희뿌연 인간들이 지나다니곤 하지만, 그런 그들을 볼 때마다 나는 이제 그들조차 일상에 합류했다고 자위하곤 한다. 이제 익숙해질 때도 되었지. 익숙한 것은 두렵지 않아. 그래서 난 그들이 두렵지 않아. 하지만, 난 이게 내 자신에게 하는 거짓말이라는 것을 안다.
희뿌연 인간들은 다행스럽게도 나를 보지 못하는 듯 했다. 어쩌다 눈이 마주처도 스처 지나갈 뿐, 그들의 시선은 내게 머물지 않는다. 천만 다행한 일이다. 하지만, 그들이 모든 인간을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가끔 길을 걷다가 마침 같이 지나가고 있던 수십명의 희뿌연 인간들의 시선이 못에 박힌 듯 한 사람에게 고정되어 있을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나는 소름끼치는 공포를 느꼈다. 그럴 때의 그들의 눈빛은 내가 보게 되는 무심하고 건조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그 감정을 형용할만한 단어를 아직 알지 못한다.
그들은 저승사자일까? 나는 올해 초에 행방불명된 친구를 떠올렸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그 아이는 어느날부터 그들의 시선을 끌었다. 아니, 어쩌면 그 아이가 시선을 끈 것이 아니라 그들이 그 아이를 선택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지나갈때마다 그들은 그 아이에게 눈길을 주곤 했다. 그리고 그 아이는 어느날 갑자기 사라져버렸다. 당시의 나는 사실 그런 일이 벌어질 것을 어느정도 짐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할 수가 없었다. 나는 그 아이가 사라진 후 내 방에서 울었다. 하지만, 그 울음도 내 방에 그들이 나타나자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들로서는 그저 지나가는 길목일 뿐이었겠지만, 그런 그들에게 내 눈물을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왜 난 이런게 보이는거지? 나와 같은 사람이 있을까?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들도 나처럼 이렇게 고통스러워할까?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다. 사실은 알고 싶지도 않았다. 나와 같은 사람이 나 말고 이 세상에 또 있다는 것이 믿고 싶지 않았고,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너무나 가엽다. 그래도 난 하루 하루 살아간다. 있을지도 모르는 그들이 아무리 가여워도, 역시 나는 내가 가장 가여웠다.
그래서 그 날도 나는 학교로 향했다. 학교는 좋았다. 거리는 보통 사람이 있는 만큼 그들도 많이 있었고, 방에 혼자 있거나 할 경우에는 나 혼자서 그들을 바라봐야만 했다. 교실은 내가 지내는 일상 속에서, 일반 사람의 수가 그들을 압도할 수 있는 몇 안되는 공간이었다. 그들은 그야말로 세상 어디에도 있었으니까.
나는 올해 초에 행방불명된 친구의 책상 위에 앉아서 멍하니 빵을 먹고 있었다. 점심시간이었다. 주인이 사라진 책상은 이상하게 그 자신도 사람들의 시선에서 사라진 것 같았다. 이 책상 위에 앉으면, 아이들은 내 존재를 쉽게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마치 나 자신도 희뿌연 인간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얼핏 오싹할 수도 있는 생각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안심이 되는 기분도 들었다. 정체 모를 이방인들과 일체감을 느끼면서, 나는 잠시나마 그들에 대한 공포를 잊을 수 있었으니까.
행방불명된 친구를 기억하는 것은 이 교실에 나밖에 없었다. 빈 책상은 계속 비어있었다. 나는 그 이유가 이 책상이 맨 뒷자리라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다른 이유가 있다고 해도 난 그것을 알고 싶지 않다. 보고 싶자 않은 것을 보고 난 후 내 삶은 이리 되었는데, 알고 싶지 않은 것을 알아버리게 되면 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어찌 알까. 나는 빵을 먹으며 다리를 천천히 흔들었다. 빵만 씹어 삼키다보니 목이 조금 매였지만, 무언가를 마시기 위해서 이 자리를 떠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나는 빵을 조금씩만 베어 먹었다.
천천히 빵을 다 먹어갈 즈음, 교실의 아이들은 제각기 도시락을 먹고서 하나 둘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나는 조금씩 사람이 줄어가는 교실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들은 줄어들지 않았다. 그들과 함께 있는 것은 사실 익숙한 일이었다. 그들은 나 혼자 자고 있는 방에도 나타나곤 했으니까. 심지어 화장실을 갈 때도. 물론 그들은 날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 나 또한 그러기 위해서 노력했다.
저들은 죽지 않는다. 대로 한 복판을 걷다가 차에 치어도, 그저 불가사의한 움직임으로 스처 지나갈 뿐이었다. 어느날 갑자기 복받쳐 오른 내가 그들을 향해서 칼을 휘둘렀을때도 마찬가지었다. 저들이 무엇인지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했지만, 어떻게 그런게 가능한지는 궁금했다. 나도 그들처럼 될 수 있을까? 그들처럼 될 수만 있다면 나는 더 이상 비일상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지 모른다. 그 무엇도 나를 해할 수 없을테니까. 실로 매력적인 생각이었다. 나는 언제고 꿈속의 그 광경을 만든 존재와 마주처버릴지도 모른다는 공포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들 또한 무섭기는 마찬가지었다. 그저 조금 더 익숙해졌을 뿐이었다. 나는 그들이 우리와 근원적으로 다른 존재들임을 안다. 나는 점심시간이 끝날 때까지 멍하니 그들을 바라보았다.
방과후. 나는 변수투성이 하교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학교가 나의 일상이라면, 등교길과 하교길은 그 일상의 변두리와 같은 것이었다. 조금만 어긋나거나 마음만 먹으면 다른 길로 들어서서 생전 보도 못한 광경과 마주칠 수도 있다. 골목길을 도는 순간 무언가가 먹다 남긴 인간과 마주칠 수도 있고, 조금 더 운이 나쁘면 인간을 먹던 무언가와 마주칠지도 모른다. 하지만, 길을 걷는 희뿌연 인간들은 그 어느 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이미 내 일상 안에 있었다. 여전히 무서웠지만, 그 공포 또한 나의 일상이었다.
나는 한걸음 한걸음 신중이 발을 옮겼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나는 나를 스처 지나가는 오토바이에도 놀라지 않을 수 있었다. 학교 선배로 보이는 남자가 탄 그 오토바이는 나를 스처지나가서 마침 길을 가고 있던 희뿌연 인간을 산산조각내고 가버렸다. 물론 희뿌연 인간은 순식간에 몸을 합치고는 자신이 오던 속도 그대로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대체 저건 어떻게 하는걸까. 저 방법만 알면 나도 더 이상 세상을 두려워하며 살지 않아도 될텐데.
나는 나 자신도 모르게 내 옆을 스처지나가는 그 희뿌연 인간에게 말을 걸었다.
"방금 그건 어떻게 한거에요?"
내 자신이 저질러버린 일에 놀란 나는 내 입을 틀어막았다. 날개뼈가 이상한 기계장치에 의해 조여지는 기분이었다. 마침 주변은 막 하교를 시작한 아이들로 소란했고, 내가 한 말은 아무도 듣지 못했다.
그만을 제외하고는.
그는 날 바라보고 있었다. 언제나처럼 스처 지나가는 시선이 아니라, 그의 눈동자는 정확하게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공포에 질려서 그 자리에 멈춰서고 말았다. 인간이 아닌, 인간과 닮았을 뿐인 무언가가 나를 똑바로 응시하는 모습은, 그 장소가 아무리 사람이 많은 하교시간의 학교 앞이라 해도 소름이 끼치는 일이었다. 그인지 그녀인지 알 수 없는 존재는 나를 똑바로 응시했다.
나는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며 그를 향해서 가방을 집어던졌다. 나도 놀랄 정도로 큰 비명이였다. 하교하던 아이들과 지나가던 사람들은 나의 비명소리를 듣고는 제각기 가던 길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았다. 사람들의 시선은 나를 향하고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내 가방이 튕겨나간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 그 존재가 있는.
내가 지르지 않은 비명이 사람들 속에서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그들의 시선은 이제 내게 머물지 않았다. 사람들은 희뿌연 인간을 보고 있었다. 희뿌연 인간은 두려워하고 있었다. 이윽고 그는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나는 뛰어나가는 그의 발에 채인 가방을 주워들고는, 털 생각도 안 하고 그를 쫒아 달렸다. 이는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었다. 생전 처음 보는 기묘한 존재를 발견해버린 사람들은, 그가 어디로 가는지 궁금증을 느낀 듯 했다. 그리고 나는 확인해야만 했다.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듯이 도망치던 그는 인파의 틈을 비집고 뚫었다. 그에게 밀쳐진 사람들은 비명을 질렀지만, 나는 그의 움직임이 일반적인 그들의 그것과는 많이 달라졌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지금의 그는 마치 인간 같았다. 그가 한걸음 한걸음 달려갈 수록, 사람들의 시선을 모을 수록 그 사실은 더욱 더 선명해져갔다. 누구보다도 가까이서 그를 따라가고 있던 나는 그가 헐떡이는 소리도 들었다.
그리고 그는 도로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달리던 트럭에 치어서 날아가버렸다.
지금까지 유유하게 이 세계의 것들과 접촉하지 않고 스처지나가던 희뿌연 인간이 트럭에 치여 날아가는 모습은 너무나 신선했다. 나는 그만 웃어버리고 말았다. 그를 친 트럭은 멈추지도 않고 가버렸다. 종종 볼 수 있는 평범한 트럭이었다. 트럭에 치인 그 희뿌연 인간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닌 희뿌연 무언가가 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그런 그를 보면서 소란을 피우고, 핸드폰을 꺼내어 사진을 찍었다. 그는 죽어가고 있었다. 엉망인 형체가 되어서.
그 소란의 틈에서 나는 웃었다. 어이가 없고 기가 막혔다. 그들은 그다지 전능한 존재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들의 시선이 우리에게 해롭듯, 우리의 시선도 마찬가지었다. 나는 정말 오래간만에 크게 웃었다. 주변 사람들은 어이없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았지만, 나는 신경쓰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도 나를 바라보았다. 내 웃음소리를 들은 희뿌연 사람들은 가던 길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았다.사람들 사이사이에서 튀어나오는 그들의 모습 때문에, 갑자기 세상이 희뿌옇게 보일 지경이었다. 나는 그제서야 웃음을 멈추었지만, 그들은 나를 보고 있었다.
갑자기 그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해할 수 없는 언어였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사람들 사이에 있었다. 내가 그들을 응시하고 있었고, 사람들 사이에서도 그들을 향하여 손가락질을 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개중에는 그런 그들을 공격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물론 그들도 그냥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이미 차에 치인 희뿌연 인간은 움직이지 않았다. 죽어버렸을까. 나는 이 희뿌연 인간들이 애초에 내 웃음소리 때문에 모인 것이 아니라, 이 시체를 보고 모여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문뜩 돌아본 주변은 혼란 그 자체였다. 일상은 어디에도 없었다. 갑자기 허공에서 차에 치인 시신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마치 무언가가 뜯어먹고 있는 듯 했다. 거기에는 기다렸다는 듯이 짐승이 있었다. 언제부터 있었던 거지? 나는 소란한 주변의 소음이 귀에서 차단되어가는 것을 느꼈다.
짐승이 나를 향해서 입맛을 다셨다. 짐승은 처음부터 그 곳에 있었다. 틈새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쪽과 저쪽의 사이에 뛰어들 먹잇감을.
나는 나를 바라보며 입맛을 다시는 짐승을 마주 보면서, 늘 꿈꾸던 소망을 다시 한번 떠올렸다. 그 먹다 남긴 시체를 보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다. 내가 그때부터 지금까지 두려워하던 모든 공포의 원흉이자 정수가 바로 저 짐승이었다.
하지만, 난 저 짐승 또한 무사하진 못하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주변엔 사람이 아주 많았다. 저 짐승이 과연 여기 있는 그들과 우리들을 다 먹을 수 있을까? 나는 나에게 달려드는 짐승의 이빨을 기다리며, 온 힘을 다해서 비명을 질렀다. 모두가 듣고, 모두가 볼 수 있도록.
모두들 날 봐. 그리고 이 짐승을 봐.
누군가 저걸 보고 죽여버려.